인슐린이 발견 10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인슐린은 당뇨병 환자의 생존률을 높인 혁신적인 치료제로 평가 받음에도 국내에서는 편견에 부딪혀 사용률이 저조한 상황이다. 이에 의사, 간호사, 보건교사 등 임상 현장의 전문가와 당뇨병 환자가 한 목소리로 인슐린에 대한 인식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 7일 진행된 제34차 대한당뇨병학회 춘계학술대회 인슐린 발견 100주년 기념 세션에서는 이같은 내용의 논의가 진행됐다.
이날 인제의대 상계백병원 내과 원종철 교수는 “인슐린이라는 무기가 있음에도 많은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고 있다”며 “자괴감, 사회에서의 장벽으로 인해 아직까지 국내에서 인슐린 투여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아주의대 내과 김대중 교수는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사용률이 한때 11~12%까지 높아지기도 했으나 현재 8% 수준에 불과하다”며 “인슐린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사용률이 저조한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토론에 참여한 당뇨병 환자, 보건교사, 간호사 또한 국내 인슐린 투여의 한계로 홍보와 인식 부족을 지적했다.
인슐린을 30년 이상 투여하고 있는 대한당뇨병연합 김광훈 대표는 “인슐린 투여의 장벽은 예나 지금이나 부족한 홍보와 긍정적인 인식 부재”리며 “인슐린을 한 번 맞으면 평생 맞아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어떻게 인슐린을 투여하고 연속혈당측정기기(CGMS)를 사용하는지에 대한 교육과 소통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환자들은 교육 수가를 내고서라도 교육을 받고자 하지만 교육을 하는 기관이 없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당뇨병 환자가 긴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대처할 수 있도록 당뇨병 종합센터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저혈당 쇼크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없다. 정부기관이 인증하는 센터에서 당뇨병에 관한 긴급상황 매뉴얼을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20년 이상 소아당뇨 교육을 맡아 온 서울대병원 소아당뇨교실 구민정 간호사는 “당뇨병교육간호사 회원들에게 힘든 점을 물어본 결과, 인슐린 치료 자체에 대한 편견이 많다고 답했다”며 “환자들이 인슐린 투여를 싫어해 상담실에 들르지 않고 가 버린다. 인슐린을 사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혈당이 조절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을 하는 사람에게도 보상이 이뤄져야만 인슐린 투여 환자를 잘 관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뇨병 환자의 생활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지만 당뇨병 환자 대상 교육은 현재 비급여”라며 “급여를 적용해 제도화해야 교육이 잘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구 간호사는 소아와 노인 환자 대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너무 어린 소아는 자가주사를 잘 하지 못해 부담을 크게 느낀다”며 “최근 독거노인 환자가 많다. 노인 환자에게는 지속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지역사회와 연계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뇨병 환자에 대한 편견도 인슐린 투여를 막는 요소로 지적됐다.
전국보건교사회 김선아 부회장은 “학령기 당뇨병 환자는 대부분 1형 당뇨병 환자”라며 “이 아이들은 인슐린을 투여하지 않으면 즉시 고혈당이 나타나거나 합병증이 발생해 인슐린을 투여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다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1형 당뇨병이 ‘뚱뚱해서 생기는 병’, ‘단 음식을 먹어서 생기는 병’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어서 아이들이 몰래 인슐린을 투여하기도 한다”며 “화장실에서 인슐린을 투여한다는 기사가 나오면 보건교사가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몰래 숨어서 투여하는 게 아니냐는 악성 댓글이 달려 상처를 받는다”고 호소했다.
김 부회장은 “이는 사실 당뇨병에 대한 홍보, 인식 개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학생들이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스스로 혈당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1형 당뇨병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 프렌닥터한내과 한정훈 원장은 개원의로서 느낀 당뇨병 치료의 한계와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원장은 “인슐린 치료의 장벽은 곧 당뇨병 치료의 장벽”이라며 “당뇨병 인지율과 치료율은 높다. 문제는 조절률이다. 당뇨병을 인지하고 치료를 하지만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뇨병은 가벼운 병이 아니다. 환자들도 당뇨병으로 인해 어떤 합병증이 생기는 지 알고 있다. 이에 따라 환자는 충분한 치료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원하지만 그러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은 많지 않다. 개인 의원에서 만족하지 못해 결국 3차 의료기관으로 가는 환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 원장은 “그럼에도 통계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 대다수가 개인 의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많은 환자들은 두 달에 한 번 의원에 방문하기도 함들다고 말한다. 이들이 3차 의료기관에서 예약을 하고 진료 받기는 더 어렵다. 이러한 환자들의 불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한 원장은 “보통 두 달에 한 번,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석 달에 한 번 방문하는 당뇨병 환자를 위해 혈당, 불편한 점 등 많은 내용을 확인해야 하지만 진료수가는 감기 환자보다 더 적다”며 “교육수가는 만성질환 관리료 2,200원이다. 그렇게 해서 환자를 교육할 수 있나. 정부에서 충분한 교육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환자들이 가까운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문제가 생기면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3차 의료기관으로 전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당뇨병 교육수가가 급여 적용되기 위해서는 의사, 간호사 등 팀이 구성돼야 하고 그마저도 평생에 한 번을 받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 개인병원에서 당뇨병을 진료하는 의사, 간호사, 영양사가 다 근무하는 병원은 극소수”라고 덧붙였다.
한편, 제약회사에서도 환자의 치료 순응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첨언했다.
한국릴리 한정희 전무는 “당뇨병 환자들이 인슐린을 투여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인슐린이 최종 치료라는 인식, 주사에 대한 거부감, 저혈당이나 부작용 우려 등이 있다”며 “당뇨병은 진행성 질환이므로 치료 단계를 높여야 하는데 알약을 추가할 때는 저항이 없던 환자들이 주사제에는 거부감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회사에서 파견한 간호사가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인슐린을 포함한 당뇨병 치료를 교육하고, 환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다”며 “다만 회사에서 파견한 간호사는 의료인이 아니므로 인슐린 용량을 조절할 수 없고, 병원 간호사의 역할과 차이가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나아가 주사 공포를 없애기 위해 주사 바늘을 가늘게 하거나 하루 한 번 투여하는 인슐린을 일주일에 한 번 투여하게 하는 등의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도 했다.
노보노디스크 당뇨사업부 이희우 상무 또한 환자의 인슐린 투여 장벽을 줄이기 위해 GLP1 유사체를 경구용으로 개발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출처 : 김혜인 기자, “인슐린 치료의 장벽이 곧 당뇨병 치료의 장벽" < 기관·단체 < 뉴스 < 기사본문 - 청년의사 (docdocdoc.co.kr)